파리의 거리 음악가들 Les musiciens du m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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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허공을 응시하던 한 남자가 목에 맨 색스폰과 반주기를 동여맨 캐리어를 이끌고 지하철에 올라탄다. 남쪽을 향하는 RER B선(*RER는 파리와 파리 근교를 잇는 고속 지하철로, 파리 중심인 샤틀레 레 알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모두 관통한다)에 올라탄 남자는 다섯 정거장이 넘도록 계속해서 연주를 한다. 시간으로만 따져도 15분이 넘는 시간이다. 연주곡목 중에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선율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율도 있다.정성껏 연주를 한 남자는 컵을 들고 지하철 안을 돈다. 밤 늦은 피곤한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지갑에서 제법 많은 동전을 꺼낸다. 나의 옆자리에 앉았던 마담은 동전 몇개를 성큼 지갑에서 꺼내서 컵에 넣는다. 그 남자는 동전을 다 받은 다음에 바로 내리지 않고 짧은 곡을 한 곡 더 연주하고 내린다.
두 세 정거장 정도만 연주하거나 더 심한 경우는 단 한 곡만을 연주하고 동전을 걷는 다른 연주자들이 많은 파리에서는 보기 드문 연주자였다. 그런 연주자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게 된다.
그는 내리자마자 다시 반대편 방향으로 가는 RER에 올라탄다.
파리와 일 드 프랑스(*파리를 둘러싸고 있는 파리 근교)에 오게 되면 이러한 음악가들을 적어도 하루에도 수차례 만나게 된다. 메트로 안에서, 혹은 메트로를 갈아타는 역 안에서. 관광객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매우 낭만적인 풍경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살기 위해, 먹기 위해 연주를 한다. 출근 시간에 가까운 이른 아침에도, 그리고 밤 늦은 시간에도 언제나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 거리의 악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문화예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파리시는 지하철 악사의 연주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치룬다.이 오디션을 통과해야지만 지하철에서 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정된 시간보다 더 오래 연주를 해서는 안된다. 다른 음악가들을 위해 자신에게 정해진 시간만을 연주해야 된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음악가들이 이런 정식 오디션을 거친 것은 물론 아니다. 파리에서 메트로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아코디언 연주자들이나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집시나 혹은 아랍인들로 그들은 자격증 없이 연주를 한다.
물론 파리시에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심하게 단속을 하지는 않는다.이는 초상화나 캐리커쳐를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거리 화가의 경우와 비슷하다. 거리화가들에게도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다양한 거리 음악가들
아직 파리생활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일같이 파리 시내를 오가는 나에게 이미 얘기한 색스폰 연주자와 같은 깊은 인상을 남긴 음악가들이 적지 않다.
오데옹 역에서 만나는 바이올리니스트와 아코디언 연주자가 그들 가운데 일부이다. 남자 바이올리니스트는 반주 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자신의 잠바를 메트로 통로에 걸어놓고 셔츠를 걷어붙인 채 연주를 하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거의 매일 같은 곡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시간에 파리 시내의 오데옹 역에 가면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습관에 의한 반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매우 정성 들여 연주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바이올린을 통해 도를 닦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리시내에서 가장 큰 역 가운데 하나이면서 RER A선, B선, D선, 그리고 메트로 1호선, 4호선, 7호선, 11호선, 14호선이 지나는 샤틀레 레 알 역은 늘 분주하고 복잡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파리 시내의 그 어느 곳보다도 빠르다. 관광객들이나 파리지앙들이나 파리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메트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한번은 샤틀레 레 알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밤에는 가능한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습관 때문에 최근에는 볼 수 없지만, 한번은 밤 늦은 시간에 샤틀레 레 알 역에서 기타리스트를 만났다. 조그마한 앰프를 연결해 놓고, 그 앰프를 의자 삼아 그 위에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던 그의 연주실력은 상당했다. 그래서 그 주위에는 자신이 타야할 메트로를 타지 않고 보내면서 계속해서 그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음악이 아름다와서 그의 연주를 한동안 듣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외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흑인 음악가가 한 명이 있다. 그를 음악가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행위예술가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기억 속의 그는 이렇다. 퐁피두 센터 앞에서 냄비 등의 각종 식기들을 매달아 놓고 그것을 마구 두드리면서 무슨 말인가를 계속해서 외쳐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바나나!’였다. 한동안 두드리다가 ‘바나나!’하고는 외치고 또 한동안 두드리는 것이었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이었지만 인상을 찡그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또한 즐겁다고도 말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그것은 그 흑인의 삶이었고, 한 존재의 외침이었다. 분명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연주는 아니었지만 그는 그렇게 두드림으로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면 먼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떠올리고 또 그것을 배워야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그 흑인은 얼마나 자유스럽고 용감한가. 퐁피두 앞에서는 그런 행위예술가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그런 행위들을 하지만, 절대로 구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당당하며, 자부심으로까지 비쳐지는 그들만의 자존심을 지키며 연주한다.
메트로나 거리에서 연주를 시작한 음악가중에는 대중적으로 성공한 경우도 있다. 한 가수의 경우는 메트로에서 노래를 하다가 음반을 취입한 것이 성공을 거두어, 더 이상 메트로에서는 연주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메트로를 떠나기 전에 그는 평소에 그를 사랑하는 팬들을 불러모아놓고 마지막 연주회를 가졌다. 공연장은 당연히 한 메트로의 종착역이었다. 그들은 함께 즐거워했고, 팬들은 그를 축복했다.
음악은 모두의 것
음악은 모두의 것이다. 서울과 파리의 같은 점은 양쪽 모두 어디서나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은 테이프나 CD를 틀어놓은 재생음악이 많은 반면에, 다른 한쪽은 조금은 거칠어도 살아있는 생음악을 더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저작권법이 매우 엄격해서 까페나 레스토랑에서 음반을 틀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만 한다. 왜 파리의 까페에서는 서울의 대부분의 까페나 레스토랑에서처럼 음악을 틀어놓는 곳이 드문지 이유가 궁금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답은 바로 주인이 돈을 내고 싶지 않아서일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까페에서 음악을 틀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다. 까페 한쪽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풍경, 파리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바쁜 일상의 걸음 속에서 놓치고 지나간 상념들을 주워담아 마음 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보는 그 느긋한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파리의 까페 주인들은 오히려 까페에 낡은 피아노를 한대 들여놓고 연주자를 고용하는 편이 더 나은지 그런 곳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예전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까페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아직도 많기는 하지만, 2차 대전 직후로 파리의 몽마르트나 몽파르나스 주변의 까페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운치를 즐겼던 그런 분위기의 까페는 찾기 힘들다. 생 제르멩 데 프레의 교회 건너편에 위치한 너무나 잘 알려진 ‘까페 드 플로르(*까페 드 플로르는 사르트르가 거의 매일 오후면 2층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 곳으로 유명하다)’나 ‘까페 뒤 마고’와 같은 곳은 그곳을 가보았노라고 자랑하기 위해 앉아있는 듯한 표졍의 관광객들과 까페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서, 그저 유명한 곳이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까페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까페의 비싼 가격을 까페의 역사를 통해 얻은 정당성처럼 으쓱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색안경을 씨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거리에서, 메트로에서 만나는 연주자들이 모두가 정규교육을 받은 음악가들은 아니다.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도 거리에 나와서 연주를 한다. 그것이 음악을 무조건적으로 수용만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의 음악은 모두의 것이 아닌,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향유하는 능동적인 입장에서의 음악은 모두의 것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잠시 거주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RER A선 벵센느 역으로 나가게 되면 오전에 가정 주부로 보이는 40대 여인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연주 솜씨로 보아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아마도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간 오전시간을 활용한 그의 아르바이트인 것 같다.
또 한 부부는 메트로 안에서 키보드를 이용해서 함께 노래하는 부부도 있다. 오고 가다가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는 다른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생일이나 파티를 여는 특별한 날에 와서 노래를 해달라고 한다고도 한다. 그 노부부의 삶은 음악이 만인의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조금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의 오래된 안타까움에 기인한다. 우리나라가 클래식 음악을 받아들여서 배우고 익힌 것이 이제 100년 가량이 되었다. 그러나 음악이 만인의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음악가는, 적어도 한국에서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런 안타까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음악을 상업화시키고, 상품화시키려는 추세로 우리는 그저 사방에 널린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음악을 듣는 소비자로 전락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피곤한 저녁 시간에는 메트로에 올라타서 흥겹게 연주하는 집시의 아코디언 소리가 피곤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햇살이 기분 좋은 오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듣는 거리의 음악가들의 연주는 여유와 즐거움, 그리고 거기에 살아서 숨쉬는 삶이 함께 한다.
글․사진 / 김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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