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타베아 침머만 인터뷰


2005-03-2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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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타베아 침머만 인터뷰
Tabea Zimmermann
잘 알려진 연주자의 인터뷰를 성사시킨다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파리에서 거주하는 연주자의 경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들의 일정이 거의 연습과 휴식으로만 계획되어 있어서 그 시간 사이에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파리에서의 침머만과의 인터뷰는 그의 빈틈없는 일정 이외에도 다른 변수가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이제 갓 9개월이 된 그녀의 세 번째 딸이었다.
전화상으로 파리에서 침머만의 모든 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다른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침머만이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도 확답을 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하인츠 홀리거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Recitanto' 연주 이틀 전에 잡힌 연습에 가보기로 했다. 연습 도중의 중간 휴식 시간에 잠시 침머만을 만났다. 그는 무대에서의 모습처럼 명랑하고, 긍정적이며, 소박해 보였다. 그녀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파리에서의 그녀의 매니저가 들려준 답변과 같은 것이다. 지금 다른 방에서 아기가 잠자고 있는데, 연습을 마친 뒤에 아기가 칭얼댄다면 인터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결국은 연습 후반부를 지켜보면서 아기가 착하게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침머만의 아기는 어머니가 자신을 잠시 버려둔 것에 대해서 원망도 하지 않았고, 또한 울지도 않았다. 침머만은 인터뷰 전에 할 일이 있다면서,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채웠다. 세 번째 아기라니 손놀림이 능숙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나서 다행히 침머만을 만나러 온 친구들을 잠시 베이비 시터로 활용하기로 했다. 침머만의 친구들이 아기를 돌보는 가운데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아기 이름이 무엇인가?
(아기를 친구들에게 맡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안아서 들어올리면서) 마야라고 한다. 나의 세 번째 아기이다. 마야 말고 6살과 3살 된 아들 둘이 있다.
-당신은 현재 어느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독일의 보쿰에 살고 있다. 나의 남편이 보쿰의 음악감독으로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최근 연주활동과 계획 등에 대해서 듣고 싶다.
지난 연주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지나간 일은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웃음). 그리고 작년에 나는 마야를 가졌기 때문에 활동이 적었다. 파리 오케스트라와 파리와 뉴욕에서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해럴드’를 연주했고, 그리고 홀리거의 지휘로 이번에 파리에서 연주하는 그의 비올라 협주곡을 톤 할레 오케스트라와 취리히에서 이미 연주했다. 그 이외에는 실내악 연주회도 했고, 그리고 현악 사중주단을 창단했다.
-현악 사중주단이 언제 창단되었고, 이름이 무엇인가?
아르 칸토 현악 사중주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르코와 칸토를 합친 것이다. 노래하는 활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올해 6월부터 본격적인 연주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나는 그동안 듀오, 트리오, 5중주, 6중주 등의 다양한 형식의 실내악을 연주했지만, 현악 사중주는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르 칸토의 현악 사중주 활동이 매우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실내악 연주로서 만족스러운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인츠 홀리거의 작품에 대해서 말해달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려달라는 요구에 침머만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이다. 그 이상은 설명할 수 없다. 악보 자체도 매우 조밀하며, 리듬도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작품이다. 물론 칸타빌레의 성격을 지닌 선율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듣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소리의 층이 그러한 서정적인 선율을 듣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매우 표현적인 면도 있지만, 세부적인 것을 잘 표현하기에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작품이다. 내 생각에 이 작품을 제대로 듣고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홀리거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듣는다.
-당신은 현대음악을 자주 연주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지는 않는다. 만일 어떤 연주자가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라는 일종의 에티켓이 붙게 되면 연주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며 폭넓게 연주를 하고 싶다. 그리고 가르치는 일 등도 조화롭게 하고 싶다. 물론 나에게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영역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어떤 한 분야, 그것도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많은 현대 음악작곡가들이 비올라를 위해서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
그렇다. 이미 비올라를 위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내 생각에 지금의 문제는 어떤 작품이 초연된 이후에 계속되서 연주되는 일이 드물며, 그것에 대해서 걱정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현대작곡가들이 비올라를 위해서 많은 작품들을 쓰고 있고, 대부분은 초연되지만 그 이후로 거의 곧바로 잊혀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홀리거의 이 곡을 다섯 번째 연주하게 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매번 연주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연주한 현대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셀리 비미쉬(Sally Beamish)라는 영국 여성 작곡가가 쓴 두 번째 비올라 협주곡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데,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당신은 보통 1년에 몇차례의 연주회를 하는가?
지금은 말하기가 어렵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 연주회를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50여회 정도이다.물론 아기를 낳기 전에는 그보다는 많이 연주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 과거에는 1년에 100여회 정도까지 연주회를 한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현재에 만족한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신선한 감정을 갖고 연주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학생들 중에는 한국인 학생이 있는가?
베를린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로는 한국인 학생이 없다. 아기를 갖게 되면서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올해는 새로운 학생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마도 내년에는 한국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와 작품들을 알고 싶다.
나는 그런 것이 특별히 없다. 오늘은 홀리거가 좋으며, 지난 번에 모차르트 현악 5중주를 알반 베르크 현악 사중주단과 연주할 때는 모차르트가 좋았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는 없다. 그러나 바르톡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다. 그의 음악은 지적으로 복잡한 면이 있으면서도 자유롭다. 그의 비올라 협주곡 외에도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다.슈베르트도 물론 좋아하며, 베토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각각의 음을 매우 표현적으로 사용한 슈만도 얘기해야겠다. 아마도 지금 얘기한 작곡가들이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들에 속할 것이다.
-당신은 제네바 국제 콩쿨 이후 국제적인 비올리스트로 활동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해석자로서 일상인으로서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특히 아이들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나는 6개월을 단위로 완전히 새로운 상태를 느낀다. 그러나 항상 아이들, 학생들, 연주회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일들에 더 많은 에너지를 기울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술관에 가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을 바라보고,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하는 일들은 늘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음악의 완성도 앞에서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나는 다른 것에서는 타협할 수 있지만 그것만은 타협할 수가 없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은 반드시 훌륭하게 마무리 되어야 한다. 20번의 연주회를 하는 것보다 단 한 번의 연주회를 잘 치루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연주회라는 것이 무대에서, 청중들 앞에서 이루어지지만 나 자신과의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연주를 하면서 우리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너무나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집중을 하는데 있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로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나는 단 한번도 무대에서 집중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다(웃음). 나는 정말로 기쁘고 행복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리허설을 하고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의 연주회를 위해서 집중하는 모든 일들이 결코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순간 순간 하고 있는 일들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 일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다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에 바로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단 한 순간 내가 그런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데, 아이들을 보러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나, 보고 싶은 순간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인내심을 잃는다.
침머만이 현재까지 초연한 비올라 작품들로는 리게티의 비올라 소나타, 홀리거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Recitanto', 샐리 비미쉬의 비올라 협주곡, 마티아스 핀처의 ‘Tenebrae' 등이 있다. 그녀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비올라는 ’바틀로(Vatelot)‘이다.
(이 인터뷰는 2004년 6월 4일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김동준/음악평론가
Tabea Zimmermann
잘 알려진 연주자의 인터뷰를 성사시킨다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파리에서 거주하는 연주자의 경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들의 일정이 거의 연습과 휴식으로만 계획되어 있어서 그 시간 사이에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파리에서의 침머만과의 인터뷰는 그의 빈틈없는 일정 이외에도 다른 변수가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이제 갓 9개월이 된 그녀의 세 번째 딸이었다.
전화상으로 파리에서 침머만의 모든 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다른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침머만이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도 확답을 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하인츠 홀리거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Recitanto' 연주 이틀 전에 잡힌 연습에 가보기로 했다. 연습 도중의 중간 휴식 시간에 잠시 침머만을 만났다. 그는 무대에서의 모습처럼 명랑하고, 긍정적이며, 소박해 보였다. 그녀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파리에서의 그녀의 매니저가 들려준 답변과 같은 것이다. 지금 다른 방에서 아기가 잠자고 있는데, 연습을 마친 뒤에 아기가 칭얼댄다면 인터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결국은 연습 후반부를 지켜보면서 아기가 착하게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침머만의 아기는 어머니가 자신을 잠시 버려둔 것에 대해서 원망도 하지 않았고, 또한 울지도 않았다. 침머만은 인터뷰 전에 할 일이 있다면서,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채웠다. 세 번째 아기라니 손놀림이 능숙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나서 다행히 침머만을 만나러 온 친구들을 잠시 베이비 시터로 활용하기로 했다. 침머만의 친구들이 아기를 돌보는 가운데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아기 이름이 무엇인가?
(아기를 친구들에게 맡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안아서 들어올리면서) 마야라고 한다. 나의 세 번째 아기이다. 마야 말고 6살과 3살 된 아들 둘이 있다.
-당신은 현재 어느 도시에서 살고 있는가?
독일의 보쿰에 살고 있다. 나의 남편이 보쿰의 음악감독으로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최근 연주활동과 계획 등에 대해서 듣고 싶다.
지난 연주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지나간 일은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웃음). 그리고 작년에 나는 마야를 가졌기 때문에 활동이 적었다. 파리 오케스트라와 파리와 뉴욕에서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해럴드’를 연주했고, 그리고 홀리거의 지휘로 이번에 파리에서 연주하는 그의 비올라 협주곡을 톤 할레 오케스트라와 취리히에서 이미 연주했다. 그 이외에는 실내악 연주회도 했고, 그리고 현악 사중주단을 창단했다.
-현악 사중주단이 언제 창단되었고, 이름이 무엇인가?
아르 칸토 현악 사중주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르코와 칸토를 합친 것이다. 노래하는 활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올해 6월부터 본격적인 연주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나는 그동안 듀오, 트리오, 5중주, 6중주 등의 다양한 형식의 실내악을 연주했지만, 현악 사중주는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르 칸토의 현악 사중주 활동이 매우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실내악 연주로서 만족스러운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인츠 홀리거의 작품에 대해서 말해달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려달라는 요구에 침머만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이다. 그 이상은 설명할 수 없다. 악보 자체도 매우 조밀하며, 리듬도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작품이다. 물론 칸타빌레의 성격을 지닌 선율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듣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소리의 층이 그러한 서정적인 선율을 듣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매우 표현적인 면도 있지만, 세부적인 것을 잘 표현하기에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작품이다. 내 생각에 이 작품을 제대로 듣고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홀리거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듣는다.
-당신은 현대음악을 자주 연주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지는 않는다. 만일 어떤 연주자가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라는 일종의 에티켓이 붙게 되면 연주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며 폭넓게 연주를 하고 싶다. 그리고 가르치는 일 등도 조화롭게 하고 싶다. 물론 나에게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영역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어떤 한 분야, 그것도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많은 현대 음악작곡가들이 비올라를 위해서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
그렇다. 이미 비올라를 위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내 생각에 지금의 문제는 어떤 작품이 초연된 이후에 계속되서 연주되는 일이 드물며, 그것에 대해서 걱정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현대작곡가들이 비올라를 위해서 많은 작품들을 쓰고 있고, 대부분은 초연되지만 그 이후로 거의 곧바로 잊혀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홀리거의 이 곡을 다섯 번째 연주하게 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지만 매번 연주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연주한 현대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셀리 비미쉬(Sally Beamish)라는 영국 여성 작곡가가 쓴 두 번째 비올라 협주곡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데,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당신은 보통 1년에 몇차례의 연주회를 하는가?
지금은 말하기가 어렵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 연주회를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50여회 정도이다.물론 아기를 낳기 전에는 그보다는 많이 연주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 과거에는 1년에 100여회 정도까지 연주회를 한 적이 있지만,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현재에 만족한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신선한 감정을 갖고 연주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학생들 중에는 한국인 학생이 있는가?
베를린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로는 한국인 학생이 없다. 아기를 갖게 되면서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올해는 새로운 학생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마도 내년에는 한국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와 작품들을 알고 싶다.
나는 그런 것이 특별히 없다. 오늘은 홀리거가 좋으며, 지난 번에 모차르트 현악 5중주를 알반 베르크 현악 사중주단과 연주할 때는 모차르트가 좋았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는 없다. 그러나 바르톡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다. 그의 음악은 지적으로 복잡한 면이 있으면서도 자유롭다. 그의 비올라 협주곡 외에도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다.슈베르트도 물론 좋아하며, 베토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각각의 음을 매우 표현적으로 사용한 슈만도 얘기해야겠다. 아마도 지금 얘기한 작곡가들이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들에 속할 것이다.
-당신은 제네바 국제 콩쿨 이후 국제적인 비올리스트로 활동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해석자로서 일상인으로서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특히 아이들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나는 6개월을 단위로 완전히 새로운 상태를 느낀다. 그러나 항상 아이들, 학생들, 연주회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일들에 더 많은 에너지를 기울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술관에 가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을 바라보고,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하는 일들은 늘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음악의 완성도 앞에서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나는 다른 것에서는 타협할 수 있지만 그것만은 타협할 수가 없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은 반드시 훌륭하게 마무리 되어야 한다. 20번의 연주회를 하는 것보다 단 한 번의 연주회를 잘 치루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연주회라는 것이 무대에서, 청중들 앞에서 이루어지지만 나 자신과의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연주를 하면서 우리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너무나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집중을 하는데 있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로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나는 단 한번도 무대에서 집중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다(웃음). 나는 정말로 기쁘고 행복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리허설을 하고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의 연주회를 위해서 집중하는 모든 일들이 결코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순간 순간 하고 있는 일들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 일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다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에 바로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단 한 순간 내가 그런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데, 아이들을 보러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나, 보고 싶은 순간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인내심을 잃는다.
침머만이 현재까지 초연한 비올라 작품들로는 리게티의 비올라 소나타, 홀리거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Recitanto', 샐리 비미쉬의 비올라 협주곡, 마티아스 핀처의 ‘Tenebrae' 등이 있다. 그녀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비올라는 ’바틀로(Vatelot)‘이다.
(이 인터뷰는 2004년 6월 4일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김동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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